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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v.daum.net/v/20190522180522425?d=y

5.18 당시 첫 사망자인 김경철(당시 24세) 씨. 1980년 5월 19일 금남로를 지나다 계엄군에 잡혔습니다. 김 씨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농아인이었습니다. 장애인증을 내보이는 그에게 군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며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의 참혹했던 죽음은 검시 기록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뒤통수와 얼굴, 오른팔과 왼쪽 어깨, 허벅지, 엉덩이 등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멍이 들고 찢어진 상태였습니다. 김 씨는 뒤통수에 가해진 강한 충격으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계엄군이 대검을 사용했다"는 증언에 대해 유언비어라고 반박했던 신군부. 하지만 대검에 의한 사망자도 있습니다. 택시운전사 민병열(당시 31세) 씨는 전남대 앞에 세워둔 택시를 가지러 갔다 계엄군에 끌려갔습니다. 구금 상태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민 씨에게 공수부원이 자세가 불량하다며 대검을 휘둘렀습니다.

민 씨의 검시 내용을 보면 뒤통수에 길이 3cm, 폭 1cm의 자창과 선상 골절, 대검 추정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대검이 단단한 뒷머리뼈를 관통해 뇌를 직접 손상시켜 숨졌다는 뜻입니다. 실제 1997년 5.18 희생자들을 구묘역에서 국립묘지 신묘역으로 이장하면서 유골 감정이 이뤄졌는데 민 씨의 유골은 뒷머리 골절이 확인됐습니다. 1997년 유골을 감정했던 박종태 교수(전남대 법의학 교실)는 "대검으로 해서 후두골 기저부가 골절이 됐다면 그건 굉장히 큰 힘으로 주어진 손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취재팀은 검시보고서 등을 토대로 주남마을 등 지원동 일대에서 발생한 차량 총격 사망자를 추려냈습니다. 관을 구하려고 버스에 탄 박현숙 씨, 화순 집으로 돌아가던 김춘례, 고영자 씨 등 13명입니다.

계엄군의 총세례에 버스 안에서 꼼짝도 못 하고 웅크리고 있었을 피해자들. 김춘례 씨의 경우 총알이 들어간 사입구 기준 가슴과 복부, 허벅지 등에서 13개의 총상이 확인됐습니다. 다른 피해자들 역시 비슷하게 다발성 총상이 기록돼 있습니다. 같은 날 지원동에서 숨진 것으로 기록된 손옥례 씨는 총상뿐 아니라 가슴 부위에 자상까지 확인됩니다.

5월 24일 광주 외곽 봉쇄를 맡았던 11공수부대는 20사단에 임무를 인계하고 광주 비행장 쪽으로 이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민가 방향으로 무차별 총격을 가해 군인을 보고 손을 흔들던 초등학교 4학년 전재수(당시 11세) 어린이와 저수지에서 놀던 전남중 1학년 방광범(당시 12세) 학생이 사망합니다.

방광범 학생은 총상으로 추정되는 부상으로 왼쪽 두개골이 가로 16cm, 세로 18cm의 광범위한 크기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에 대해 이호 전북대 법의학과 교수는 "우발적 총상이나 유탄으로 볼 수 없고 키가 크지 않은 형체의 물체를 향해 정조준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중학생 아들을 마중 나간 박연옥 씨는 군인을 보고 놀라 하수관로에 몸을 숨겼지만, 군이 뒤쫓아 총을 쏘면서 하복부와 회음부에 관통 총상을 입고 숨졌습니다. 하수관로에 웅크린 채 숨어있던 여성에게까지 총을 쏜 것을 증명하는 총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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